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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중 수교 25년, 화장품 ‘차이니즈 드림’ 25년

사드 보복 ' 출(出)차이나' 위기…그래도 ‘제2 내수시장화’ 도전해야

[코스인코리아닷컴 권태흥 기자] 8월 24일로 한중수교 25주년을 맞는다. 생일날을 앞두고 한중 관계는 사드 보복으로 25년만에 얼어 붙었다.

단적인 예가 “24일 양국 정상과 외교장관이 수교 축하 메시지를 교환할 것”이라는 외무부 발표에서 볼 수 있다. 8월 24일 베이징과 서울에서 수교 25주년 기념 리셉션도 대사관 수준에서 참석 인사급도 하향 조정됐다. 꺾어지는 해임에도 이벤트가 모두 취소, 축소된 탓이다.

20주년 행사 때 당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참석한 ‘사건’에 비하면 양국 관계가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말이 돌 정도다.

1992년 한중 수교로 열리게 된 중국 시장은 한국 화장품 업계로서는 ‘노다지’였다. 당시 내수 한계와 R&D 낙후로 FTA가 추진될 때마다 화장품 업계는 ‘가장 타격을 입을 품목’ 중 하나였다.



▲ 상하이 태평양백화점의 라네즈 광고.(왼쪽) 수교 1년만에 선양공장 설립한 아모레퍼시픽
서성환 회장.

노다지란 노두(露頭)’, 즉 땅 위로 광맥이 드러난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다지를 캐려면 노다지임을 알아보는 안목과 땀, 그리고 눈물이 필요하다. 그 선구자가 아모레퍼시픽 고 서성환 회장이다.


서성환 회장은 1945년 9월 5일 징용으로 풀려나던 베이징에서 중국 진출 꿈을 꿨다. 개성 어머니의 동백기름을 떠올렸고 4개월여만에 배를 타고 환국했다.


1992년 한중 국교정상화로 중국 진출을 결정할 때 서 회장은 징용길에서 본 봉천(선양)을 기억했다. 당시 화장품 수출관문인 상하이보다 봉천을 택한 것은 철저한 준비로 중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전초기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진출은 현지 생산공장 설립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1년여 준비 끝에 1993년 12월 선양에 회사를 설립하고 아모레 미로 기초라인 생산을 시작했다.


중국은 지역에 따라 구심점이 되는 브랜드로 승부수를 띄었다. 동북3성은 ‘미로와 마몽드’, 상하이는 ‘라네즈’로 브랜딩 전략을 수립했다. 그리고 6년 만인 1999년 12월 당시 서경배 사장은 중국 시장 확대를 위한 ‘상하이 대전’ 준비에 착수했다.


상하이는 중국 물류와 유통의 중심지이자 최대도시다. ‘상하이에서 만든 화장품’을 선호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심장부를 공략하는 특별한 전술이 필요했다.


2002년 상하이 공장을 준공하고 라네즈 시제품을 먼저 홍콩에서 출시, 경쟁력을 시험했다. 초도 물량 5000개 완판으로 자신감을 얻었고 드디어 상하이 백화점에 입점했다. 현재 라네즈는 360여 개의 현지 백화점과 복합쇼핑몰의 로드숍 오픈, 티몰에 진출했다.




▲ 중국 신생활그룹 심양공장 전경(왼쪽), 청도공장 전경(오른쪽).

또다른 초기 중국 진출 사례는 중국 신생활집단유한공사의 안봉락 회장이다. 그는 유통판매의 달인으로 중국 진출 전 국내에서 아모레, 피어리스, 코티 등 14개 화장품대리점을 운영했다.

그는 판매 일선에 뛰면서 '기업의 성공은 고객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원칙을 인식하고 있었다. 1992년 한중 수교 직후 중국 여행에서 그는 ’내가 만든 화장품‘의 꿈을 실천할 기회를 엿보았다. 그리고 1년의 철저한 시장조사 끝에 1994년 상아화장품회사를 설립했다.

안봉락 회장은 “좋은 품질의 화장품을 제조하는 것은 물론 유통판매까지 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론 아래 화장품의 수직계열화를 추구했다. 그 결과 신생활그룹은 화장품화장품·건강식품·생활용품을 연구 개발·제조·판매하는 중국 굴지의 화장품 그룹으로 성장했다.

2015년 기준으로 종업원 900여 명, 판매원 12만명, 매출액 7억 7,300만달러(약 8,500억원)에 달한다. 현재 신생활그룹은 심양·상해·청도에 3대 생산 제조 기지를 두고 심양화장품연구소·청도식품연구소·한국피부과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전역에 56개 자회사와 5,000여개 점포를 두고 있다. 18개 브랜드와 300여 종의 시리즈 제품을 중국 전역에서 판매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서강대, 대구한의대, 중국연변과학기술대연구소와 산학연을 체결, 최고의 R&D 공장기술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 화장품 업계는 수교 1년만인 1993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을 필두로 여러 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두드렸다. 그러다 2000년 2월 중국 언론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한류(韓流)’라고 부르면서 한국 관련 제품의 선호현상이 열풍처럼 불었다. 한류 붐을 타고 K-뷰티도 비상의 나래를 활짝 폈다.

2016년 대 중국 화장품 수출액은 15억 7,027만달러에 이른다. 증감률은 2015년 대비 33.96%다. 이는 화장품 전체 수출액 41억 8,330만달러의 38%를 차지한다.

하지만 지난해 7월 7일 사드 배치 발표로 촉발된 중국 정부의 보복으로 매출 하락세가 뚜렷해졌다. 특히 3‧15 한국관광금지령으로 2분기 화장품기업 영업이익이 줄즐이 반토막 남으로써 ‘중국 시장의 정치 리스크’가 변수로 등장했다.

이제 중국인 관광객의 감소는 면세점 매출 하락, 따이공의 객단가 급증 등으로 이어졌지만 현지 판매도 녹록치 않다는 이야기가 심심치않게 들린다. 기업들도 수출 다변화 전략으로 동남아시아, 특히 베트남으로의 ‘출(出)차이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중국 시장은 한국 화장품 업계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거대시장이다. ‘정치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K-뷰티로서는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화 할 것이냐, 아니면 중국 로컬 브랜드의 ‘동북4성 하청기지’로 전락할 것인가라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25년 전 한중 수교 직후 도전했던 K-뷰티 선구자들의 각오를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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