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인코리아닷컴 김세화 기자] 국내 화장품 산업이 연일 수출 실적을 경신하는 가운데 글로벌 확장 전략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해외 시장에서 K-뷰티의 성장을 이끌어 온 토너·세럼 등 기초 스킨케어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넘어, 부가가치가 높고 기술적 진입장벽을 확보한 새로운 카테고리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기존 K-뷰티가 가격 경쟁력과 빠른 트렌드 대응력을 갖춘 '패스트 뷰티'를 기반으로 성장했다면, 최근에는 독창적인 제형 기술과 뷰티 디바이스, 니치 향수, 바이오 기반 뷰티 테크 등 차별화된 경쟁력을 앞세워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장벽을 넘어 세계 화장품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K뷰티의 4대 핵심 신성장 동력을 집중 분석했다.
# 기술 장벽이 만든 황금시장, ‘하이드로겔 마스크팩’의 질주
최근 K-뷰티 품목별 수출에서 가장 눈부신 도약을 보여주는 카테고리는 단연 마스크팩이다. 과거 시트 마스크팩 시장이 저가 경쟁으로 치킨게임을 벌이던 것과 달리, 피부 온도에 반응해 유효성분이 젤처럼 녹아 흡수되는 ‘하이드로겔’ 제형이 글로벌 전역에서 폭발적인 초과 수요를 일으키며 전체 시장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마스크팩 수출 추이

하나증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마스크팩 수출은 하이드로겔 제형의 폭발적인 증가세에 힘입어 전년 동기 대비 59% 급증했다. 바이오던스, 메디큐브 등이 쏘아 올린 탄력 마스크 열풍에 미국 아마존은 물론 대형 오프라인 유통사인 타겟(Target), 코스트코(Costco) 등 글로벌 유통 채널까지 국산 하이드로겔 제품의 입점을 서두르는 추세다.
흥미로운 점은 글로벌 소비자들이 하이드로겔 마스크에 열광하는 것에 비해, 정작 이 고품질 제형을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제조사가 전 세계적으로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하이드로겔 공정은 원료 배합부터 코팅, 냉각, 성형까지 정밀한 숙련도와 특수 설비가 필요해 웬만한 중소 ODM 업체는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높은 진입장벽을 갖고 있다.
박종대 하나증권 연구원은 "하이드로겔 마스크팩은 글로벌 수요가 넘치는 데 반해 공급처(생산처)가 제한적인 구조"라며 "독점적 제조 역량을 확보한 한국의 특정 제조사들이 높은 마진을 남기는 공급자 우위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술적 우위가 만들어낸 탄탄한 진입장벽 덕분에 단기 유행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이고 독점적인 수익 모델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이러한 독점적 구조 속에서 시장을 선점한 전문 기업의 실적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하이드로겔 전문 ODM 사이자 코스닥 상장사인 제닉은 밀려드는 해외 주문 덕에 역대 최대 매출을 경신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이어가고 있다. 코스맥스, 한국콜마, 코스메카코리아 등 대형 ODM 사들 역시 글로벌 마스크팩 수출 호조 속에 국내 사업 부문 매출이 20% 안팎으로 동반 성장했다.
# K-뷰티 新 성장 엔진, 글로벌 시장을 사로잡은 '뷰티 디바이스'
에이피알(APR) 등으로 대표되는 ‘뷰티 디바이스’ 카테고리는 홈케어의 대중화를 이끌며 K-뷰티 영토 확장의 핵심 전위부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강력한 기술력에 높은 가성비까지 갖춘 국산 뷰티 기기들은 미국 아마존 등 대형 쇼핑 시즌마다 점유율 1위를 휩쓸며 글로벌 메인스트림에 안착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아마존 블랙프라이데이 당시 에이피알의 '메디큐브'는 뷰티&퍼스널케어 부문에서 16.4%라는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로 1위에 올랐다. 이는 2위 브랜드인 세라비(CeraVe, 5%)의 3배가 넘는 수치다. 집에서도 전문 에스테틱 급의 효과를 누리고 싶어 하는 글로벌 소비자의 니즈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산업적 관점에서 뷰티 디바이스는 단순히 일회성으로 판매되는 내구재에 그치지 않고, 기초 화장품 매출을 폭발적으로 견인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 기기가 화장품의 피부 흡수율을 극대화해 주기 때문에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의 생태계에 머무르게 만드는 강력한 락인(Lock-in)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보적인 제품력을 바탕으로 에이피알은 올해 1분기 미국 시장에서만 2,48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50% 급증한 수치로, 통상 화장품 업계의 비수기인 1분기에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다. 화장품과 테크의 영리한 결합이 국내 브랜드사의 해외 실적 턴어라운드를 이끄는 거대한 견인차가 된 셈이다.
이제 뷰티 디바이스는 온라인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선진국 오프라인 유통망의 문을 여는 마스터키가 되고 있다. 일례로 메디큐브는 미국 전역에 1,400개 매장을 보유한 대형 드럭스토어 ‘얼타뷰티(Ulta Beauty)’ 전 점 입점을 완료하는 등 오프라인 메이저 리테일러 매대의 가장 잘 보이는 전면을 빠르게 선점해 나가는 중이다.
글로벌 시장의 성장세 역시 긍정적이다. 세계 홈뷰티 디바이스 시장은 2024년 약 7조 원 규모에서 2030년 45조 원 규모로 확대되며 연평균 36%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특히 미국 시장은 같은 기간 1.9조 원에서 9.7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돼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 일상 속 틈새 공략, '생활밀착형 뷰티'로 재정비한 헤어·바디케어
글로벌 시장을 향한 K-뷰티의 영토 확장은 얼굴에 바르는 스킨케어를 넘어 일상 속 필수 소비재인 헤어케어와 바디케어 영역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헤어·바디케어 제품군은 과거 국내 대기업들이 내수 시장 지키기에만 연연하던 방어적 카테고리였으나, 최근 독창적인 성분과 고유의 제형, 그리고 기능성을 무기로 글로벌 틈새시장을 매섭게 개척하는 중이다.
박종대 연구원은 "K-뷰티의 수출 다변화 기조 속에서 헤어·바디케어 제품군은 기초 제품의 성과를 이어받아 새로운 글로벌 고객군을 창출하고 선진국 및 신흥국 매대 지배력을 동시에 높이는 핵심 카테고리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국내 뷰티 대기업들은 기초 화장품 중심의 전통적인 포트폴리오를 넘어 헤어·바디케어 브랜드를 글로벌 시장 공략의 전략 품목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세계 최대 인구를 보유한 인도 시장에서 '미쟝센'과 '려'를 앞세워 현지 주요 뷰티 플랫폼 입점을 확대하며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인구의 약 40%가 25세 이하인 젊은 소비시장인 만큼, 한국 뷰티 트렌드에 관심이 높은 현지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넓히는 역할을 헤어케어 브랜드가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시장에서도 헤어·바디케어를 둘러싼 유통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가 뷰티 카테고리를 빠르게 확대하자, 이마트 등 대형마트 사업자들은 MD 조직을 재정비하고 기능성 헤어·바디 제품군을 강화하며 대응에 나섰다. 헤어·바디케어가 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핵심 집객 품목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브랜드들의 존재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글로벌 뷰티 업계의 투자 움직임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세계 1위 화장품 기업 로레알 그룹은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 올릭스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며 약 1,100억 원 규모의 자금 조달에 참여했다. 로레알은 의약 분야에서 활용되던 RNA 간섭(siRNA) 기술을 차세대 탈모 및 모발 재생 솔루션으로 확장하기 위해 올릭스의 기술력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번 투자가 단순한 재무적 투자를 넘어 한국이 보유한 뷰티 테크와 바이오 기술력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기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한다. K-뷰티가 더 이상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가는 제조 강국에 머무르지 않고, 차세대 뷰티 기술을 개발하는 혁신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 글로벌 모멘텀의 시작점에 선 향수, 미국·유럽 넘어 중동까지
최근 K-뷰티의 카테고리 확장을 이야기할 때 최근 가장 주목받는 분야 중 하나는 향수(프래그런스)다. 전통적으로 향수 시장은 유럽과 미국의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들이 주도해 왔지만, 최근에는 독창적인 브랜드 정체성과 스토리텔링을 앞세운 K-프래그런스가 해외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향수 수출 추이

하나증권에 따르면 국내 향수 수출은 2020년 이후 연평균 42% 성장했다. 올해 1분기 향수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5% 증가하며 사상 처음으로 2,0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이어 4~5월에도 높은 수출 증가율이 이어지면서 하며 가파른 증가세를 지속되고 있다.
특히 향수 산업의 핵심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과 유럽에서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현재 국내 향수 수출은 아시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최근 북미와 중남미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미국이 단일 국가 기준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화장품 산업 전반에 나타났던 '미국 시장 안착 이후 글로벌 확산'의 흐름이 향수 시장에서도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 시장 진출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세계 최대 향수 소비 시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중동 지역 수출 역시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며 새로운 기회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향수 소비 문화가 발달한 지역에서 한국 브랜드의 입지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K-프래그런스의 경쟁력이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흐름의 중심에는 차별화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한 국내 니치 향수 브랜드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본투스탠드아웃(BORNTOSTANDOUT®)은 독창적인 브랜드 세계관과 감각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투자사와 주요 유통 채널의 관심도 이어지며 K-프래그런스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시장 환경 역시 우호적이다. 글로벌 향수 시장이 개성과 취향을 중시하는 프리미엄·니치 향수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국내 향수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과거 스킨케어 중심으로 형성됐던 K-뷰티의 경쟁력이 이제는 향수와 같은 고부가가치 카테고리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증권은 "K-뷰티의 카테고리 확장은 품목 다변화를 넘어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의미한다"며 "향수, 뷰티 디바이스, 헤어케어 등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K-뷰티는 소비자의 일상 전반을 아우르는 토털 뷰티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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