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인코리아닷컴 김세화 기자] 글로벌 화장품 산업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시장을 움직이는 성공 공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백화점 매대 중심의 기존 유통 구조는 소셜 플랫폼과 인공지능(AI)에 자리를 내주고 있으며, 트렌드를 주도하던 럭셔리 브랜드의 상징성은 성분과 효능 중심의 소비 흐름으로 전환되고 있다.
14일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McKinsey & Company)의 '진열대에서 알고리즘으로(From aisle to algorithm): 2030년 뷰티 산업의 성장을 이끄는 카테고리, 채널, 콘셉트 전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뷰티 시장은 연평균 5% 성장해 오는 2030년 약 5,900억 달러(약 810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맥킨지는 이러한 성장세 속에서 뷰티 산업의 경쟁 지형을 뒤흔들 핵심 변화로 다음의 세 가지 트렌드를 제시했다.
# 세포라보다 틱톡, 검색창보다 AI
맥킨지는 화장품 시장의 주요 변화 중 하나로 소비자가 제품을 탐색하고 구매하는 방식의 전환을 꼽았다. 과거 소비자들은 백화점이나 뷰티 전문점의 매대를 둘러보며 제품을 탐색했지만, 이제는 소셜 미디어(SNS)와 알고리즘 기반한 AI 플랫폼이 브랜드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핵심 접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미국 뷰티 시장에서는 온라인의 아마존(Amazon)과 틱톡(TikTok), 오프라인의 얼타(Ulta Beauty)와 세포라(Sephora) 등 4개 사업자가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아마존과 틱톡의 올해 매출 합산액은 세포라와 얼타의 매출 합계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2025~2030년 화장품 유통 채널 매출 추이와 전망(단위: 억 달러)
특히 틱톡 숍(TikTok Shop)을 중심으로 한 소셜 커머스는 2023년 이후 매년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새로운 뷰티 유통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2026년에는 뷰티 매출만 약 4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반면 전통 백화점 채널은 브랜드 이탈과 오프라인 유통 경쟁력 약화 등의 영향으로 연평균 2%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맥킨지는 "온라인 채널과 AI 플랫폼의 확산은 변화가 단순히 판매 채널의 이동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의 성장 공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며 "SNS에 최적화된 브랜드가 단기간에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SNS 마케팅 성공 사례로 한국의 스킨케어 브랜드 닥터멜락신(Dr. Melaxin)을 제시했다. 닥터멜락신은 각질 제거와 피부 개선 효과를 짧은 영상으로 통해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콘텐츠 전략을 앞세워 틱톡 숍 진출 이후 미국 틱톡 숍 스킨케어 카테고리에 10%의 점유율을 확보했다. 이 기간 누적 매출은 5,700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 접점의 변화는 검색 환경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구글 등 검색엔진에 키워드를 입력해 제품 정보를 찾았다면, 최근에는 생성형 AI 비서나 거대언어모델(LLM)에 피부 고민과 성분 정보를 입력해 맞춤형 제품을 추천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맥킨지는 "향후 3~5년 내 전자상거래 거래의 최대 35%가 AI 에이전트에 의해 이뤄질 것"이라며 "기업들은 기존 검색엔진 최적화(SEO)를 넘어 생성형 AI가 제품 성분, 효능, 임상시험 결과 등을 이해하고 비교·추천할 수 있도록 돕는 생성형 엔진 최적화(GEO, 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비싸면 좋다"는 공식의 붕괴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도 변화했다. 오랫동안 뷰티 시장은 고가 브랜드와 럭셔리 스킨케어를 중심으로 하는 프리미엄 소비를 트렌드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브랜드 명성보다는 실제 효능과 성분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맥킨지는 "스킨케어 시장에서 오랫동안 통용돼 온 '비싸야 효과가 좋다(Premium equals performance)'는 공식이 힘을 잃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럭셔리 브랜드보다 임상적 신뢰성을 갖춘 피부과 전문의 브랜드나 합리적인 가격과 효능을 내세운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들의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에스티로더는 2025 회계연도 매출이 전년 대비 8% 감소했다. 블룸버그는 "에스티로더가 중국 시장 둔화와 면세 채널 부진에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젠지(Gen Z)세대 공략에 성공한 한국 브랜드가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성장 정체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일본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 역시 K-뷰티와 C-뷰티의 공세 속에 글로벌 영향력이 약화되며 지난해 520억 엔 규모의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실적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시장의 기대치도 크게 낮아져, 지난달 기준 시세이도 주가는 2019년 대비 3분의 1 수준까지 하락했다.
다만, 소비자들의 프리미엄 소비 욕구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백 달러에 달하는 고가 스킨케어 대신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으면서도 만족감을 제공하는 '스몰 럭셔리(Small Luxury)'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뷰티 시장 카테고리별 매출 추이와 전망(단위: 억 달러)
대표적인 수혜 카테고리가 향수(Fragrance)다. 실제로 향수 시장은 2019년 이후 연평균 약 8% 성장하며 2025년 기준 색조 화장품(Color Cosmetics)을 제치고 스킨케어와 헤어케어에 이어 세계 3대 뷰티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반면 색소 중심 소비 트렌드가 향수와 기능성 스킨케어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메이크업 시장은 더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맥킨지는 "소비자가 여러 향을 조합해 사용하는 '향수 레이어링(Layering)' 문화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니치 향수 수요가 확산되면서 프리미엄 향수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과거 럭셔리 스킨케어가 주도했던 프리미엄 소비의 상당 부분이 향수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향수 시장에서도 한국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5월 누적 향수 수출액은 3,362만 달러(약 508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71.8% 증가했다. 특히 지난 4월에는 월간 향수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800만 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업계 관계자는 "스킨케어와 색조 중심이었던 뷰티 시장이 향수 등 라이프스타일 뷰티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특히 미국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향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한국 뷰티 수출 포트폴리오도 한층 다변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소비자 니즈가 바꾼 새로운 시장
이제 뷰티 시장의 변화는 기업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만들어내고 있다. 새로운 소비 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이 등장하면서 기존에 없던 시장과 수요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유통 부문에서는 다이소와 K-뷰티 브랜드의 협업 모델인 ''리틀 시스터(Little Sister)' 전략에 주목했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브랜드 가치 훼손을 우려해 초저가 채널 진출을 꺼렸지만, 최근에는 본 브랜드와 차별화된 전용 서브 브랜드를 통해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이 확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화장품 기업들은 다이소의 가격 제한(5,000원 이하) 정책에 맞추기 위해 기존 주력 제품을 단순 할인 판매하는 방식 대신, 성분 구성과 패키지를 단순화한 채널 전용 서브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는 유지하면서도 가격에 민감한 젊은 소비자층을 효과적으로 유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의 '미모 바이 마몽드'를 비롯한 다수의 다이소 전용 브랜드들은 출시 직후 품절 사례를 기록하며 높은 관심을 끌었다. 이에 힘입어 다이소의 뷰티 부문 매출은 2025년 한 해 동안 70% 증가했다. 점포 수를 공격적으로 늘리기보다 대형 점포와 핵심 상권 중심의 전략을 통해 점포당 매출을 끌어올린 점도 성장 배경으로 꼽힌다.
이 같은 흐름은 다이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무신사와 지그재그 등 패션 플랫폼은 물론 편의점과 대형마트까지 뷰티 카테고리를 강화하며 가성비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확산이 뷰티 시장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시르카나(Circana)에 따르면 위고비(Wegovy), 삭센다(Saxenda) 등 비만치료제를 사용하는 가구는 일반 가구보다 뷰티 제품에 약 30% 더 큰 비용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격한 체중 감량 이후 나타나는 얼굴 볼륨 감소, 피부 탄력 저하, 탈모 등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스킨케어, 헤어케어, 보충제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시장이 새로운 성장 기회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현상이 최근 확산되고 있는 '홀리스틱 웰빙(Holistic Well-being)'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소비자들이 정의하는 뷰티의 개념이 단순한 외모 관리를 넘어 자신감과 자기 돌봄, 정신적·신체적 건강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이너뷰티, 수면 케어, 선케어 등 웰빙 영역과의 경계도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맥킨지는 "더 이상 브랜드의 헤리티지나 오프라인 유통망만으로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없는 시대"라며 "소비자가 제품을 발견하고 평가하며 구매하는 전 과정이 재편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이 2030년 시장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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