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인코리아닷컴 김세화 기자] 중국에서 화장품 위조가 생산과 물류, 온라인 판매가 분업화된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정황이 현지 언론의 탐사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대형 공장 대신 일반 주택에 생산시설을 숨기고, 원료를 여러 곳으로 나눠 운반한 뒤 완제품은 야간에 택배 차량으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온라인에서는 판매점을 짧은 기간만 운영하고 새로운 계정을 만드는 방식으로 플랫폼의 단속을 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중국 신경보(新京报)는 지난 7일 광둥성 산터우시 차오양구 허핑진 일대에 대한 탐사보도를 통해 현지 위조화장품 제조·유통 실태를 공개했다. 신경보는 "해당 취재를 통해 원료 반입부터 제조·포장·배송, 온라인 판매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가 분산·조직화된 생산·유통 구조가 확인됐다"며 "위조화장품 시장이 개인 사업자나 소규모 작업장에서 하나의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탐사보도는 여러 온라인 플랫폼에서 구매한 화장품 6개를 정품과 비교·분석한 뒤, 해당 제품의 판매 경로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접촉한 일부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구매한 제품을 사용한 뒤 피부가 붉어지거나 손상되는 등의 증상을 겪었으며, 접촉성 피부염 진단을 받았다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경보는 위조화장품 제조시설이 하나의 공장에 집중되지 않고 민가 곳곳에 분산돼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보도에 따르면 원료를 실은 차량이 허핑진 일대로 진입한 뒤 삼륜차 등을 이용해 여러 민가로 원료를 나눠 운반했다. 각 생산시설 주변에는 CCTV와 경보장치가 설치됐으며, 외부인의 출입을 감시하는 인력도 배치됐다.
생산 이후의 유통 과정 역시 분업화돼 있었다. 완제품은 주로 야간에 택배 차량을 통해 이동했는데, 잠입한 취재진이 밤 8시 이후 인적이 드문 장소에 정차한 택배 차량에 무표시 포장물을 싣는 모습을 포착하기도 했다. 제조시설에서 판매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대신 일반 택배망을 활용해 제품을 외부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온라인에서는 여러 판매처를 번갈아 개설·폐쇄하는 방식으로 단속을 피했다. 신경보에 따르면 판매자들은 온라인 판매점을 장기간 운영하기보다 짧은 주기로 판매점을 교체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일부 판매자는 온라인 판매 계정을 약 2주마다 새로 개설하는 방식으로 단속과 플랫폼의 감시를 피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장에서는 SK-II를 비롯해 헬레나 루빈스타인, CPB, 디올, 구찌 등 글로벌 유명 브랜드를 모방한 화장품이 확인됐다. 신경보에 따르면 원가 3~5위안에 불과한 가짜 립스틱은 판매상에게 약 60위안에 공급됐으며, 온라인에서는 정품 매장 가격인 410위안의 절반 수준인 200위안대에 판매됐다. 정품보다 저렴하지만 지나치게 낮은 가격은 아니어서 소비자가 온라인 할인 제품이나 면세품, 병행수입 정품으로 오인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매체는 전했다.
신경보 보도 직후 현지 당국은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차오양구 시장감독관리국은 9월 7일 차오양구 정부가 주도하고 시장감독, 공안, 허핑진 정부 등이 참여하는 합동 법 집행팀을 구성해 관련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국은 위조가 의심되는 장소를 봉쇄하고 관련 물품을 압수했으며, 사건 관련자에 대해서는 정직 조사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이어 다음 날인 9월 8일 구체적인 단속 결과를 공개됐다. 차오양구 합동 법 집행팀은 언론 보도에 등장한 장소들을 대상으로 현장 확인을 진행해 가짜 제품에 사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빈 용기와 포장박스 등 2만 8,690개, 향료 4통, 생산설비 18대, 크림류 340통을 확보했다. 또 하추어 지역의 한 민가 소유자가 체포됐으며, 공안기관은 사건을 입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중국 위조화장품 산업은 국내 화장품 업계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특히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한국 화장품 역시 위조 대상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해외 온라인에서 차단된 K-브랜드 위조화장품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식재산처에 따르면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서 차단된 K-브랜드 위조화장품은 2023년 1만 6,774건에서 2024년 2만 3,494건, 2025년 3만 6,116건으로 2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에는 단순한 제품 모방을 넘어 한국 브랜드의 상표를 선점하거나 이를 악용하려는 움직임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식재산처가 집계한 지난 10년간 화장품 분야의 무단선점 의심 상표 피해를 국가별로 보면 중국이 2,73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인도네시아 1,498건, 베트남 917건, 태국 838건, 싱가포르 214건 순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중국에서 K-뷰티 가품 생산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앞서 올해 5월 중국 광둥성 자오칭에서는 약 2,000㎡ 규모의 화장품 가품 제조시설이 적발됐다. 현장에서는 에이피알의 메디큐브 제품을 모방한 가품 1,400여 개가 압수됐다. 이곳에서는 원료를 혼합·배합하는 단계부터 제품 충전, 라벨 부착, 포장까지 화장품 생산의 전 과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광둥성 산터우에서는 올해 상반기 임시 건축물과 철제 간이창고 등을 이용해 한국 화장품 가품을 제조한 사례가 확인됐다. 이들은 100~150㎡ 규모의 창고에서 여러 브랜드의 K-뷰티 제품을 무단으로 제조했는데 여기서 압수된 메디큐브 가품만 3만 9,000여 개에 달했다. 70㎡ 규모의 별도 임시 건축물에서도 메디큐브 가품 1,200여 개가 발견됐다. 현지 경찰이 추적한 또 다른 은닉 장소에서는 단속에 앞서 제품을 빼돌리고 빈 포장재만 남겨둔 정황도 포착됐다.
이어 지난 7월에는 중국 광저우시 바이윈구 공안국과 시장감독관리국의 합동 단속에서 메디큐브 6개 품목의 모방품 6,000여 개가 압수됐다. 당시 단속에서는 스킨1004와 아렌시아 등 다른 국내 K-뷰티 브랜드 제품도 함께 적발됐다. 적발된 위조품은 용기와 포장 상자뿐 아니라 정품에 부여되는 제조번호(LOT 번호)까지 복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해당 사례 모두 산터우 허핑진 사례와 마찬가지로 생산시설을 한곳에 고정하기보다 여러 장소로 분산하고, 필요에 따라 제품과 포장재를 다른 장소로 옮기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었다. 대규모 공장 하나를 찾아내는 것만으로 전체 생산망을 차단하기 어려운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위조화장품 산업이 분업 체제로 진화하면서 가품의 생산주기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가품 판매업자들은 신제품 출시 직후 온라인에 가짜 판매 페이지를 개설해 소비자 반응과 주문량을 확인한 뒤, 일정 수준의 수요가 확인되면 원료, 용기, 포장재 등을 확보해 생산에 들어간다. 신제품 출시 이후 가품 생산까지 걸리는 기간은 한 달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가품 제조 자체를 외부 업체에 맡기는 방식도 나타나고 있다. 특정 브랜드 제품과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은 제조업체가 정품을 모방한 용기를 확보하고, 성분이 명확하지 않은 내용물을 충전한 뒤 상표와 포장까지 갖춰 납품하는 식이다.
온라인 환경도 가품 생산 속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제품을 모방하기 위해 정품을 직접 확보해 외형이나 포장 등을 확인해야 했지만, 현재는 공식 홈페이지, 온라인 쇼핑몰, SNS 등을 통해 용기, 패키지, 색상 등 상세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산된 K-뷰티 가품은 화물 운송 플랫폼 등을 통해 선전과 둥관 등 국제 물류 거점으로 이동한 뒤 유럽과 중동, 미국 등 해외 시장으로 유통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루마니아 세관에서는 메디큐브의 ‘PDRN 핑크 콜라겐 캡슐 크림’ 위조 의심 제품 100여 점이 압류된 바 있다.
이처럼 가품의 유통 범위가 넓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대응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가품이 발견된 판매 페이지를 신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플랫폼과 세관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응하는 전담 인력을 별도로 두는 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에이피알은 아마존과 틱톡샵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지식재산권 침해와 가품을 모니터링하고 플랫폼 제재를 담당할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브랜드 사칭 사이트에 대응하고 플랫폼과의 협력을 통해 브랜드 보호 체계를 구축하는 업무도 포함된다. 스킨1004 등 K-뷰티 브랜드를 운영하는 크레이버코퍼레이션 역시 국내외 상표 출원과 제3자 분쟁, 세관 통지 등에 대응하고 브랜드 전반의 IP 보호 전략을 담당하는 인력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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