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2 (목)

  • 구름조금동두천 24.6℃
  • 맑음강릉 27.0℃
  • 맑음서울 24.9℃
  • 맑음대전 25.4℃
  • 맑음대구 23.8℃
  • 맑음울산 26.7℃
  • 맑음광주 24.7℃
  • 맑음부산 24.9℃
  • 맑음고창 25.3℃
  • 맑음제주 24.0℃
  • 맑음강화 22.3℃
  • 맑음보은 25.1℃
  • 맑음금산 26.2℃
  • 맑음강진군 25.2℃
  • 맑음경주시 28.1℃
  • 맑음거제 23.3℃
기상청 제공

[취재파일] 출혈경쟁, 제조사도 예외 없다


[코스인코리아닷컴 오선혜 기자] 국가별 세계 화장품 시장 규모 11위, 산업 규모 17조원이란 수치는 국내 화장품 산업의 외형을 가늠하는 상징적 지표다.


3월 4일 기준 식약처에 등록된 화장품 제조업체는 1,544개, 화장품 제조판매업체는 4,093개를 기록했다. 

시장은 한정적인데 너도나도 화장품에 뛰어 들며 외형이 커지다 보니 경쟁도 치열해졌다. ‘출혈 경쟁’이란 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연중무휴 세일을 반복하는 브랜드숍, 세일 경쟁에 가세한 H&B숍 등이 단적인 예다. 

브랜드숍 대부분의 제품이 OEM ODM으로 만들어지는 사실을 감안하면 과도한 세일 경쟁은 제조업체의 ‘허리띠 졸라매기’란 전제 위에서 가능했음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중소 제조업체 관계자는 “브랜드숍 시대가 열리고 제조업은 더 열악해 졌다. 단가를 맞추기 위해 마진율을 줄여 박리다매로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브랜드숍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브랜드숍으로 고정비용을 만들어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애초 제조업체의 희생을 토대로 계약이 이뤄진 탓에 브랜드숍 세일이 제조업체의 추가적인 할인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수년째 원가를 올릴 수 없는 현실 또한 간과할 순 없다. 물가는 오르는데 계속 같은 비용을 유지했다면 가뜩이나 낮은 마진율이 더 줄어들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비용 절감을 위해 대체 원료를 쓰거나 이전보다 낮은 등급의 원료로 교체하는 업체들이 상당수라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브랜드숍을 비롯해 몇몇 제조업체가 한국에서 발생한 적자를 수출로 커버한다는 소문이 꽤 신빙성 있게 들리는 것도 이같은 국내 상황이 전제돼 있어서다. 

한편, 치열한 경쟁 구도는 제조업 풍경도 달라지게 만들었다. 과거 소위 잘나가는 상품의 판매 기준이 3개월 내 3000~5000개 였다면 요즘은 그 두 배인 6개월로 늘어났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가운데 브랜드숍이 양산한 패스트 코스메틱(Fast Cosmetic) 문화는 끊임없이 신상품을 쏟아내게 하면서 업체들의 재고부담까지 낳았다. 이런 이유로 100kg에서 시작하던 최소발주수량은 최근 50kg 대까지 떨어졌다. 소규모 제조를 원하는 제조판매사의 증가로 소량 생산이 가능한 제조업체들이 틈새시장을 공략한 이유도 한몫했다.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제조원가 절감을 위해 도입된 소사장제는 하청에 재하청을 낳아 아래로 갈수록 열악해지는 구조를 양산하고 있다. 구조적 모순은 재하청 업체의 비정규직 근로자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재하청 업체의 희생 역시 간접고용된 비정규직 근로자의 희생 속에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밑바닥 희생을 토대로 쌓아올린 화장품 제조업의 현실은 ‘아웃소싱 공화국 대한민국’이란 냉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 와중에 ‘~카더라’ 통신을 통해 중소업체의 전유물이던 에스테틱 제품의 제조를 모 대기업이 시작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브랜드숍, 대기업을 ‘고객’으로 잡지 못한 영세 제조업체의 돌파구였던 에스테틱 제품 시장에 대기업이 가세한다면 영세 업체들의 설자리는 그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국내 화장품 산업 규모 17조원이라는 화려한 숫자 뒤에 가려진 화장품 제조업의 열악한 현실은 누군가 얻기 위해 누군가는 잃어야 하는 제로섬(Zero-Sum) 게임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