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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준 추문, 미용업계에 도움될 수도 있다?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최근 이런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인데,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인터넷의 세계화가 그 원인으로 꼽힌다. 왜 그럴까? 예전 같으면 묻혀버릴 ‘개인사’가 ‘인간사’로 바뀔 수 있는 플랫폼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을 바꾸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개인은 약하지만 집단은 강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도 결국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집단으로서 사는 세상이다.

최근 미용업계의 최대 구설은 업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박준뷰티랩 박준 대표의 성폭행 사건이다. 박 대표는 며칠 전 여직원 4명을 성폭행 및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됐다. 증거 불충분으로 구속은 면했다.

포털 사이트 프로필에 1951년생으로 나오니 박 대표의 나이는 올해로 63세다. 성폭행 운운하기도 부끄러운 연배일뿐더러, 본인의 주장대로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해도 30대로 알려진 상대방 여성의 나이를 감안할 때 우리 정서에서는 용납하기 어렵다.

특히 오래전부터 성폭력은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권력지배관계에 따른 범죄라는 게 상식임을 감안할 때 나이 차가 거의 두 배 나는 회사 대표와 부하직원의 이런 관계를 정상적으로 보는 이는 드물 것이다. 몇몇 언론에서는 박 대표의 과거 행적을 더듬어 파헤치고 있고 이를 미용업계 전반으로 확대해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어쨌든 지금은 양측의 주장이 맞서고 있는 만큼 경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사실 이 답도 안 나오는 추문을 거론한 이유는 따로 있다. 지명도 높은 유명인사의 이런 스캔들은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뭔가 억울한 일을 해결하려면 여론의 힘을 등에 업는 것이 가장 유용한데, 세상의 이목이 미용업계에 집중돼 있는 이 순간을 잘 활용해 업계의 체질을 개선해보는 건 어떨까.

주지하다시피 꾸준히 제기돼온 미용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열악한 근로환경이다. 지난 2월 청년유니온이 국내 프랜차이즈를 포함, 198개 미용실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미용실 스텝 근로조건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종사자들의 평균 시급은 2,971원, 근로시간은 주당 평균 64.9시간으로 나타났다. 

이는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노동법에 명시된 통상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이나 하루 종일 서서 근무하는 특성 등은 차지하고라도 2012년 기준 최저시급인 4,580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보수를 받고 일해 온 셈이다. 이건 거의 착취 수준이다. 

“이런 일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라던가, “미용실 경영이 열악해서 그렇다”는 변명은 이제 좀 삼갈 때가 됐다. 박준뷰티랩을 비롯해 박승철, 이철 등 유명 헤어디자이너 이름을 단 프랜차이즈의 연 매출액이 1,000억원을 넘나드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텝이라 불리며 착취를 당하는 종사자들이 이런 저임금에 강도 높은 노동을 강요당하면서도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현재 미용업계의 구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이에 대해 ‘전대 자본주의의 잔재인 도제식 시스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가르쳐주는 이가 없으면 배울 수 없는 이런 시스템에서 누가 근로조건을 따지겠냐는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 뿐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미용업계의 미래는 없다. 인재가 곧 미래이기 때문이다.

올해 정부는 화장품 뷰티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2012년 대비 32.9% 급증한 207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 가운데에는 뷰티전문인력 양성 및 관리 분야도 당당하게 포함돼 있다.

대외적인 글로벌 경쟁력은 내부가 탄탄해지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추문이지만 온 국민의 관심이 미용업계에 집중되고 있는 지금, 뜻 있는 업계 종사자들이 중지를 모으고 팔을 걷어부쳐  제대로 된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한 발 내딛어 보는 것은 어떨까. 관습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작업이 쉬울 리 만무하지만, 여론의 뜨거운 지지와 호응을 앞세운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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