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패션잡지 보그 편집장과 의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크리니크는 최초의 코스메슈티컬 브랜드로 주목 받았다. 이 브랜드는 제품의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이 피부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통해 이뤄진다.
피부과 전문의 알레 박사에 의해 개발돼 약국 유통을 통해 인지도를 알리기 시작한 비쉬, 약사 출신 존 키엘이 약국에서 판매하기 시작해 입소문을 탄 키엘도 대표적인 코스메슈티컬 브랜드다.
코스메슈티컬은 '화장품(Cosmetic)'과 '의약품(Pharmaceutical)'의 합성어로 20여년 전 알버트 클리그만(Albert Kligman) 박사가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시작됐다. 구체적으로 약사나 피부과 전문의가 기획과 연구개발에 참여해 만든 화장품, 제약회사나 병원의 피부과에서 생산한 화장품을 말한다.
로컬 코스메슈티컬 시장을 말하다
▲CNP차앤박 화장품 여드름 라인(좌측), BRTC 민감성 라인(우측). |
국내 코스메슈티컬 시장은 1990년대 말 이지함을 시작으로 CNP차앤박, 고운세상, 리더스, 아름다운나라 등 피부과 의사들이 만든 화장품이 출시되며 본격화됐다. 최근엔 BRTC, 닥터영, 닥터 자르트, SNP화장품 등 신규 브랜드들이 합세해 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기에 비타테라(일동제약), 이지듀, 닥터 스킨케어(대웅제약), 에스트라(태평양제약), 한스킨(셀트리온) 등 제약회사와 바이오 업체들도 합류해 코스메슈티컬 화장품 시장의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코스메슈티컬은 아토피, 민감성, 여드름 등 문제성 피부를 가진 이들이 피부 개선과 치료 목적으로 화장품을 찾으며 시작됐다. 때문에 화장품의 여러 카테고리 중 스킨케어 제품군에 집중돼 있는데 색조처럼 유행에 따라 쉽게 바꿀 수 없어 고객들의 브랜드 충성도가 높고 재구매율이 높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처럼 고객의 특징이 뚜렷하고 충성도가 높은 점은 코스메슈티컬 화장품 시장이 가진 강점으로 꼽힌다. BRTC 이한나 홍보담당자는 “불특정 다수를 두고 접근하는 일반 화장품과 달리 고객의 니즈와 성향 파악이 쉬워 상품개발, 마케팅 등 여러 면에서 구체적인 접근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가격 변화에 민감하지 않은 점도 코스메슈티컬 화장품 시장의 강점이다. 닥터영 채경아 대표는 “코스메슈티컬을 찾는 고객들은 세일이라고 확 몰리는 현상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소비자 특성은 자연스럽게 제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데 차앤박화장품 장정혜 홍보담당자는 “코스메슈티컬을 찾는 소비자들 중엔 유해성분은 물론 성분비, 함유 성분 등 제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따지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소비자 특성이 명확하다 보니 BRTC의 경우처럼 코스메슈티컬의 전문성을 앞세워 특허성분과 기술 등으로 브랜드 신뢰도를 높이는 사례도 있다. 이 브랜드는 국제화장품원료협회(CTFA)의 화장품원료집(ICID)에 유기농 특허성분이 등재되며 브랜드 인지도와 신뢰 구축에 성공했다.
한편 코스메슈티컬이기 때문에 ‘강세’를 보이는 제품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제품이 BB크림이다. BB크림은 탄생부터 피부과에서 출발한 제품으로 피부과 시술 후 자외선과 피부 자극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다.
또 아토피, 민감성, 여드름 피부 전용 제품도 코스메슈티컬하면 빼놓을 수 없는 제품군이다.
▲시계방향으로 SNP화장품, 닥터영, 닥터지(고운세상코스메틱), 리더스코스메틱의 BB크림. |
이렇듯 코스메슈티컬은 네임밸류, 트렌드, 모델 등 화장품 구매의 여러 요소들 중 유독 제품의 효능에 초점이 맞춰진다. 때문에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진다.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해외에서 초창기에는 효과를 강조하다가 피부 트러블이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비타민은 미백, 피부 재생, 노화 방지 효과가 뛰어나지만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비타민 함유량을 높이자 낮에는 홍반 증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초기 소비자들은 불편함과 부작용을 예상하고 코스메슈티컬을 접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코스메슈티컬 시장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요즘은 기존의 효능과 기능에 고급스러움과 편리함을 더하며 안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코스메슈티컬 시장 발전을 위한 과제
피부에 관심이 많고 트러블이 있는 이들이 효능을 기대해 찾는 화장품이란 인식이 있다 보니 유행에 따라 소비자들의 니즈에 부응해 빠르게 제품을 출시할 수 없는 점은 코스메슈티컬 시장의 한계로 꼽힌다.
코스메슈티컬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제품 개발에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고 말한다. 아이템 선정부터 상품개발 등 모든 과정에서 제품의 품질, 효능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이다.
민감성, 여드름 등 문제성 피부를 가진 이들이 많이 찾는 화장품답게 안전한 제품을 내놓기 위해 오랜 검증은 필수다. 야심차게 출시한 제품에서 부작용, 트러블 등이 발생했을 때 그 여파는 일반 화장품보다 크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읽으면서 효능과 안전함을 함께 가지고 가야 하는 점은 코스메슈티컬 시장이 가진 대표적인 어려움이다.
이지함화장품 백지선 과장은 “신중하게 제품을 만들다보니 일반 브랜드와 비교해 확실히 스피드는 떨어진다. 대신 오래가는 제품을 지향한다. 스테디셀러로 가자는 철학이 있는데 이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인 동시에 한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은 브랜드 노출의 어려움이다. 접근성, 홍보 면에서 브랜드숍을 이기기 어렵고 제품군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 그 후광 효과를 기대하는 마케팅 전략은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이 시장에서 부담이 클 뿐더러 코스메슈티컬 화장품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브랜드 관계자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스타를 기용했을 때 당장 그 효과는 높을 수 있다. 하지만 코스메슈티컬이란 특성을 놓칠 위험이 크고 일반 브랜드인것 처럼 취급될 수 있다. 그러다보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광고, 마케팅은 제품처럼 천천히 느리게 갈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많은 코스메슈티컬 브랜드들이 바이럴 마케팅과 매거진 등 온라인과 지면 광고에 집중하고 있다.
이와는 다른 고민을 하는 코스메슈티컬 브랜드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업체는 유럽 수입 브랜드와 자체 브랜드를 병원에 납품하고 있는데 브랜드 홍보를 꺼려하는 병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들에게 가격이 노출될 위험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인지도 높은 브랜드를 선호하기 때문에 ‘홍보의 적정선’을 지키는 것이 이 업체가 가진 어려움이다. 어느 정도의 브랜드 인지도는 가져가면서 대중적으로 너무 많이 노출되서도 안된다는 게 그가 말하는 적정선이다.
한편 업계 내부에선 ‘닥터’ 명칭의 남발도 지적됐다. 전문성과 신뢰도가 더해진다는 이유로 최근 닥터라는 명칭이 들어간 브랜드가 많은데 실상은 피부과와 관련이 없는 화장품인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들 몇몇 브랜드를 소비자가 코스메슈티컬 화장품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통채널 다각화로 시장 확대
코스메슈티컬은 일부 피부과 의사들의 치료 목적으로 개발돼 병원이나 자사 온라인몰에서 판매되던 형태에서 최근에는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홈쇼핑, 면세점, 대형마트, 드럭스토어로 유통채널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까진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이 강세지만 올리브영, 왓슨스, 롭스 등 드럭스토어의 성장으로 오프라인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엔 모바일 구매율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코스메슈티컬 브랜드 관계자는 “모바일 구매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우리 회사도 관련 시스템 구축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제품력에서 코스메슈티컬이 강세를 보이는 민감성, 트러블 케어 라인. 아름다운나라 스팟케어(좌측), 이지함 트러블 기획세트(우측). |
코스메슈티컬에 기대하는 모든 것
흔히 ‘피부과 화장품’으로 불리는 코스메슈티컬은 더 이상 특정 피부타입의 사람들만이 사용하는 화장품이 아니다. 시장이 커지고 대중화되면서 효능과 효과면에서 인정받는 제품이란 인식이 중론이 된 지 오래다.
화장품 시장에 가져온 ‘바람’도 긍정적이다. 닥터영 채경아 대표는 “코스메슈티컬의 등장으로 화장품 시장의 다양성과 전문화가 활발해 지고 있다. 약사와 의사 등을 앞세워 피부과 시술 못지 않은 개선 효과를 전문적으로 내세우는 점, 기존 화장품 브랜드에 비해 적은 수준의 광고비용과 적극적인 R&D 투자는 이 시장이 가진 차이점”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코스메슈티컬 하면 처음에는 ‘피부과 화장품’이라 이해했는데 지금은 그 폭이 넓어져 피부 전문가가 백그라운드로 있다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성공의 관건은 소비자가 원하는 효과, 효용이 무엇인지를 얼마나 잘 파악하는 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정고객, 마니아들이 많은 코스메슈티컬의 특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감성 피부, 예민한 피부 그래서 특정 브랜드만 사용 가능한 이들은 여전히 코스메슈티컬의 주요 고객이다.
취재 차 만난 코스메슈티컬 관계자들은 시장 발전을 놓고 이구동성으로 원론적인 해답을 제시했다.
요점은 이렇다. 제품 스펙트럼이 넓은 일반 화장품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확실한 제품력과 특화된 ‘잇 아이템’ 개발에 집중할 것, ‘스테디셀러’로 승부할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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