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 (전) 세라잼 H&B 대표이사] 치열한 경쟁 속의 국내 화장품 시장 환경은 강력한 거대 대기업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양강 체제에서 수많은 중소기업이 난립하고 있는 혼돈의 세계와 같다. 이는 비단 브랜드 파워 뿐 아니라 국내 화장품 유통현황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니스프리, 에뛰드, 아리따움 등)과 LG생활건강(페이스샵, 네이처컬렉션, 비욘드, 뷰티플렉스 등)은 브랜드 로드샵 뿐 아니라 H&B숍, 멀티샵 등 다양한 채널에서 대부분의 화장품 유통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브랜 드샵과 같은 자체 유통을 가지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브랜드 인지도도 없어서 종합 유통채널인 H&B샵이나 대형마트의 화장품 코너에도 설 자리가 없는 것이 한국 화장품 산업의 냉혹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온라인 채널이나 홈쇼핑 채널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소비자에게 브랜드가 알려진 기업들의 독차지이며 간혹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기존 화장품과 차별화를 통해 성공신화가 된 기업들도 있지만 그것은 1만 여 기업들 중에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한국의 화장품 중소기업들은 거대한 소비시장인 중국으로 진출했으나 이마저도 2016년 갑작스러운 사드의 영향으로 어렵게 되자 이번엔 하나같이 베트남 등을 비롯한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재 한국 화장품 시장을 보면 중국 관광객의 감소와 치열한 브랜드샵 간의 과열된 경쟁으로 브랜드 차별성은 사라지고 상시 할인의 난무로 인해 가격구조가 붕괴되면서 상위 업체였던 스킨푸드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으며 잇츠스킨도 폐점률이 증가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차별화된 전략이나 콘셉트가 없이 화장품 사업이 잘 된다니까 무조건 뛰어드는 식의 쏠림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쏠림현상은 사업 아이템이나 업종을 선정할 때 제대로 된 판단이 아닌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하는 실패의 함정에 빠지게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쏠림현상은 여전히 계속되어 현재 한국에서 설 땅을 잃은 중소기업들의 동남아시아 시장을 향한 러쉬현상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차별화나 장기적인 브랜드 전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아이디어만을 따라 단기적 성과만을 따르는 장사꾼적 마인드인 경향이 많아서 우려가 된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팀이 매년 발행하는 '트렌드 코리아'(2016년)에 의하면 브랜드의 몰락시 대가 왔다고 한다. 구매의 나침반이던 브랜드의 역할이 흔들리고 소비자들은 점점 서로 소통하면서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한다. 탄탄한 정보력으로 무장한 소비자들이 브랜드보다는 제품의 질을더 따지는 가성비로 기울고 브랜드 명성의 시대는 갔다고 한다. 그래서 복면을 쓰고 실력만으로 승부를 거는 복면가왕처럼 소비시장에서도 중소 기업의 이름없는 제품이 히트 상품으로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가성비 제품에도 이름이 있고 콘셉트가 있는 것처럼 노브랜드에도 브랜드는 있다. 단지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기 전까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무리 가성비가 좋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차별화된 제품 이라도 세렌디피티(Serendipity) 같은 우연한 계기가 없었으면 수많은 상품들의 범람 속에서 히트상품이 되기는 쉽지 않다. 사실 유명 브랜드에는 항상 결정적 터닝 포인트가 된 세렌디피티가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운좋게도 소비자들에게 회자되는 제품이 되었다 하더라도 브랜드로 자리잡지 못하면 또다른 경쟁적 가성비의 신제품에 밀려나 다시 소비자 기억에서 잊혀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브랜드가 중요하고 브랜드가 주는 환상이 필요하다. 소비자가 브랜드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면 제품의 성능과 관련된 기능적 편익(Functional Benefit) 이외에 좀 더 광범위한 제품 관련 문제들 뿐 아니라 브랜드에 반영된 상징 성(Symbolic Benefit)이나 개성과 같은 감성적인 요소(Emotional Benefit)에 의해 고객가치가 만들어 진다.
이로 인하여 소비자들이 특정 브랜드에 대해 느끼는 가치지각은 실질적인 제품의 마케팅과 판매 비용보다 높으며 브랜드 구축활동의 비용보다 더높게 형성된 소비자 가치지각에 의해 프리미엄 가격책정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브랜드가 하나의 물체로 존재하는 제품에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어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켜 주기 때문이다. 좋은 브랜드는 철학과 역사를 가지고 자신만의 자기다움(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하나로 표현되는 것이 브랜드이고 기업은 이러한 브랜드를 포지셔닝을 통해 소비자 마인드 속에 깊이 심어 주는 작업을 한다. 그래서 남들 것을 흉내 내는 브랜드는 제대로 된 포지셔닝을 하지 못하게 된다.
설령 성공한다 해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명성을 유지하는 유명 브랜드들은 대대로 그들만의 철학을 유지해오며 남들과 비슷해지려고 하기 보다는 다르게 가고자 하는 정체성을 찾아 소비자 들에게 오랜 기간동안 뿌리깊게 브랜드를 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집단환상이라는 말도 있다. 마치 종교처럼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비교검증과 분석을 불가능하게 하며 때로는 소비자를 특정 브랜드에 미치게 할 정도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도 한다.
이제 국내 화장품 산업에서 중소기업들이 해야 할 일은 가성비와 특정 기능을 한 순간 팔고 빠지는 단기적 한탕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초기 소자본 창업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일의 되풀이는 계속 이어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조금씩 브랜드를 키우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일본의 무인양품 (無印良品)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상표가 없는 좋은 물건’이라는 뜻으로 제품 외관에 브랜드 로고가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원래 중저가의 의류, 가정용품, 문구류 등을 중심으로 판매하던 무인양품은 최근 슈퍼마켓의 식품영역으로 확장 하며 일본 유통업계에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브랜드 로고가 없는 무인양품도 바로 소비자들이 기억하고 찾아가는 브랜드라는 것이다.
신윤창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대학원 마케팅전공 박사과정 중. 1988년 LG전자, 피어리스, 애경산업, LG생명과학, 세라젬H&B 대표이사 역임, *저서 : <챌린지로 변화하라>, <우당탕탕 중국이야기>, <인식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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