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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한국 최초의 제1호 화장품 '박가분'

조정혜의 재미있는 화장품 이야기(2)

요즘 화장품 하나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화장을 잘 하지는 않는 사람이라도 스킨과 로션은 가지고 있고, 기초적인 화장품 몇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화장품을 사기 전에, 화장품 용기는 구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예쁜 화장품 디자인은 수많은 화장품들 중에서 그 화장품을 한 번 더 관심을 가지고 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화장품을 사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화장품을 사려고 왔던 사람의 눈에 한 번 더 띄는 것은 그만큼 구매 확률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 박가분
1920년까지만 하더라도 '상품'이란 지금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집에서 적당히 만든 것을 장에다 파는 형태로, 그 전형적인 방식은 액수에 따라 직접 들고 간 용기에 물품을 담아 주던 시절이었다. 

또한 상표도 있고 생산자 및 판매자의 실명을 정확히 밝힌 근대적인 상품도 아니었으며 대부분 기생이나 창녀들이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시기에는 급속한 개화 바람을 타고 화장품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가격이 엄청나게 폭등했으며 당시 상류층 여성들이 주 고객으로 등장하면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당시 화장품은 대부분이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아라사(러시아)에서 들여온 외제였다. 

마침내 1916년 국산품 '분(粉)'이 나왔다. 이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한 것이 '朴가粉'이었다(성이 朴氏인 현재 모 그룹의 창업자가 만든 화장품 분이라 해서 朴가분이라 했다). 

서울 종로 연지동에서 가내 수공업 규모로 제조하여 1922년 조선 총독부의 정식제조허가를 받아 생산, 판매하기 시작한 박가분은 두산그룹을 창설한 박두병의 선친인 박승직이 제일 처음 만들었다. 

1920~1930년대 초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하루에 5만갑이나 팔렸으나 재래식으로 생산을 했기 때문에 밤낮으로 일을 했어도 수요를 충당하지 못했다. 

두께가 3mm정도이고, 바둑판 모양으로 만들어져 이것을 한 조각씩 떼어 손바닥에 놓고 물을 몇 방울 떨어뜨려 개어서 얼굴에 찍어 발랐는데 그 '뽀얗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 1956년 화장품 최초 광고.

물이나 기름에 잘 녹았고 사람의 살갗에도 잘 퍼지고 접착이 잘되어서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신문에 광고도 했는데 한번 바르면 곰보도 완전히 없어지고 백옥 같은 피부를 갖는 것으로 선전을 하였다.

이처럼 여성들을 유혹하는 문구가 연일 신문에 광고로 게재되면서 장안의 여성들을 들쑤셔 놓았고,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고 "바르면 딴사람처럼 이뻐진다"는 광고에 기생들이 앞 다투어 발랐다. 

이렇듯 얼굴이 검은 것은 물론 기미와 잡티까지 감춰주고 향기까지 나는 박가분은 여성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지만 납 성분이 많이 들어있어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화장을 많이 하는 기생들을 중심으로 피부가 푸르게 변해가기 시작하였다. 너무 많이 자주 발라 납중독을 일으킨 것이었다. 

박가분 속의 납 성분으로 얼굴이 썩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치명적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모르고 발랐다가 납중독으로 푸르게 변해가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또 하루에도 몇 차례씩 더 두껍게 바르는 악순환으로 점차로 중독이 심해져 피부가 썩고 머리까지 납이 스며들어 정신이상을 일으킨 기생들이 속출했다. 

그러다 보니 박가분 속의 납성분 해악이 알려지고, 마침내 "살 파먹는 가루"로 소문이 나면서 한 번이라도 발랐다면 곧 얼굴이 망가지고 결국은 죽게 된다고 소문이 나기 부풀려지기 시작하면서 하루에 수만 곽씩이나 팔려나가던 것이 순식간에 매출이 뚝 떨어졌다. 

이러한 납의 유독성 문제로 여성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1937년 자진 폐업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박가분은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으로 정식제조허가를 받아 생산, 판매하기 시작하였으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 광고를 하므로서 화장품제조업계에서 선구적 위치에 서게 되었다.


조정혜 나우코스 영업기획실 부장
필자 약력 : 성결대학교 출강, 로레알 파리 본사(국제상품기획부), 레브론, LG생활건강 근무
연락처 : 019-359-7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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