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대표 저서인 ‘소비의 사회’에서 “기호적 재화가 물질적 재화의 가치를 넘어선다”고 언급하며 “최고의 기호적 가치는 육체”라고 말한 바 있다.
수십 년 전 예언을 반영하듯 현재 세계 화장품 시장 규모는 2634억 달러로 전 세계 IT 시장과 비슷한 규모로 성장했으며 앞으로도 그 성장세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국내 화장품 시장은 브랜드숍의 등장과 함께 화장품 유통구조의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들 수 있다. 더불어 온라인 마켓의 활성화와 기능성, 유기농 등 제품군의 다양화가 더욱 늘고 있다. 그 중심에는 ‘3300원의 신화’를 이룩한 브랜드숍 ‘미샤’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신화를 일군 미샤가 흔들리고 있다. 올해 초 있었던 무(無)파라벤 허위광고, 서영필 대표가 개인적으로 운영 중인 SNS에서의 설전, 브랜드간 과도경쟁에 따른 매출액 대비 수익률 악화,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더욱 지속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 등 총체적 난국을 맞고 있는 모습이다.
미샤가 이룩한 ‘브랜드숍’ 제국
2002년 서울 이대 상권에 첫 브랜드숍을 오픈한 미샤는 화장품 업계에 일대 혁명을 가져 왔다. 화장품 매장에서 직접 제품을 테스트해 볼 수 있고 또 가격 거품을 뺀 화장품들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혁명은 신화가 됐다.
연구원 출신인 서영필 대표는 “유통거품을 뺀, 저렴하고 질 좋은 화장품을 만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서 대표는 브랜드숍 직영 판매방식으로 유통과정을 단축시켜 가격 거품을 뺐다. 불필요한 비용을 최대한 줄였고 화려한 용기보다 내실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
미샤의 성공사례를 지켜본 업계에서는 너도나도 중저가 브랜드숍 런칭을 시작했다. ‘화장품백화점’을 통한 유통구조에서 하나 둘 브랜드숍이 가세한 ‘원 브랜드 제품군’이 형성됐고, ‘적당한 가격에 질 좋은 화장품’은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중심에는 미샤가 있었다.
미샤가 이룩한 제국은 로마와 비교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화장품 관련 업계는 브랜드숍 신화를 창조한 미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기존에 없었던 획기적인 마케팅도 관심을 끌었다. 에이블씨엔씨 홍보마케팅팀 김선아 과장은 △외국 고가 브랜드와의 비교 마케팅 △매월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미샤데이 등을 거론하면서 “업계 최초로 미샤에서 시도한 이슈 마케팅”이라고 설명했다.
출혈경쟁으로 인한 '소비자 피로도' 증가
미샤와 더페이스샵, 네이처리퍼블릭 등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 사랑을 받아온 브랜드숍들은 서로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근 문제가 발생되기 시작했다. 매년 정점을 찍었던 매출과는 다르게 영업이익은 크게 악화됐다. 경쟁적으로 펼친 할인정책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5개 브랜드숍 연간 할인판매 일수

▲ 자료제공 : 우리투자증권. |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브랜드숍 상위 5개 업체(미샤,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에뛰드, 네이처리퍼블릭)의 2013년 할인판매 일수는 9월 기준 총 252일로 지난 2010년과 비교해 무려 5배 이상 늘어났다.
브랜드 충성도가 비교적 낮은 브랜드숍의 경우 경쟁사가 진행하는 할인정책에 무관심할 수 없었고 급기야 업체간 과도한 경쟁으로 이어져 수익구조는 더욱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다.
로마가 함락된지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제국의 신화가 거론되는 것처럼 자의든 타의든 미샤는 신화적 존재로 어김없이 이슈의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WK마케팅그룹 마케팅연구소 한태수 소장은 “현재 수많은 브랜드숍이 진행하는 프로모션이 1년 365일 내내 펼쳐진다”며 ‘1+1’ 같은 무분별한 할인정책은 소비자들의 피로도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1년 중 절반 이상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화장품에 열광했던 소비자는 무감각해진다. 피로도는 계속 쌓여간다. 그리고 서서히 불신으로 전이된다.
한태수 소장은 “수년 전 3300원 화장품에 열광했던 소비자는 10년이 더 지난 지금 또 다른 미샤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10년 전 유통의 그 혁신이 구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성 상징하는 SNS는 양날의 칼
생활건강용품 피죤 연구원 출신인 서영필 대표는 일찍이 온라인 마케팅에 눈을 떴다. 제품의 성능에 자신이 있었던 서 대표는 여성 뷰티 사이트 ‘뷰티넷’을 통해 자사 화장품 판매를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개인 페이스북을 운영하며 네티즌과 활발한 소통을 진행 중에 있지만 그로 인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 미샤 타임 레볼루션 나이트 리페어 사이언
스 액티베이터 앰플(50ml). |
올해 초 ‘미샤 타임 레볼루션 나이트 리페어 사이언스 액티베이터 앰플(50ml)’에 대해 ‘무(無)파라벤’이라는 허위광고를 한 혐의로 행정처분을 받은 바 있다.
공교롭게도 이 제품은 에스티로더의 ‘갈색병’ 미투 상품으로 논란이 됐던 제품이었고, 에이블씨엔씨 홍보팀이 언급한 업계 최초로 시도했던 ‘비교품평 마케팅 제품’ 중 하나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서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샤의 구형 사이언스 엑티베이터에 대한 광고 2개월 중지 행정처분이 내려졌는데요. 현재 절찬리 판매되고 있는 미샤의 뉴 사이언스 엑티베이터와는 하등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고 밝혔다.
그는 뷰티넷에 올린 해명글을 통해 “당시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도덕적 책임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당시 화장품법에 따르면 사용된 원료에 함유된 보존제(파라벤과 같은)는 제품의 상자에 표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 해명글로 인해 서 대표는 구설수에 올랐다. 물론 그의 말은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는 말이지만 소비자들은 ‘국민감정법’을 들고 일어섰다.
한태수 소장은 “소통창구가 활발해진 현재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사업체 대표들의 SNS 활동은 긍정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수위조절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의든 타의든 사적 공간으로 활동하고 소통하고 있지만 브랜드의 대표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본인 의도와 다른 의미화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소장은 “기업체 대표의 SNS 활동은 회사의 대표성을 갖고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창구이면서도 의도하지 않게 휘두른 칼에 상대를 베어버릴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라고 강조한다.
제국의 몰락? 제2의 전성기?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미샤 브랜드는 ‘브랜드숍의 고유명사’이자 ‘서영필 대표이사’로 거론된다. 즉 ‘마케팅의 천재이자 과감한 시도, 결단력의 소유자 서영필’로 알려진 천재 한 명이 이룩한 신화로 상징된다.
한 소장은 리브랜딩(Rebranding)을 강조하면서 “최초의 브랜드는 대표자가 만들지만 10년이 지나면 소비자와 함께 공유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대표자 개인의 브랜드가 아닌 소비자가 함께 하는 브랜드가 살아남는 현실을 반증한다.
한 소장은 “내재된 브랜드 안에서 또 다른 고유의 가치를 찾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간 소비자간 열린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브랜드 가치는 소비자가 부여하는 것임을 결코 잊으면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화장품 시장의 ‘10년 주기설’을 보면 화장품 시장의 유통구조는 근 10년을 주기로 큰 변혁의 시기를 거쳤다. 공교롭게 미샤를 시작으로 브랜드숍이 국내 화장품 시장을 장악했던 시기와 엇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
서양 문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고대 로마제국은 멸망했다. 제국의 자만심은 파멸로 귀결된다. 제국의 몰락인가? 아니면 제2의 도약인가? 미샤는 지금 중대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