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인코리아닷컴 전문위원 이창석] 언제부터인가 TV 프로그램을 보면 새터민이 출연하는 방송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된 새터민 출연 프로그램을 세세히 들여다 보면 적나라한 북한의 생활상을 맛깔나게 묘사하고 긴장되는 탈출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이에 대한 방청객과 패널들의 놀라움과 감동으로 공통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정치 또는 사회적인 이슈는 차치하더라도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은 여러 측면에서 남한과 다르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있다.
의식주부터 문화, 교육, 사회적 통념과 사고방식까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서로 다른 점에 대해 출연자들은 사실적으로 이야기해 주고 패널들은 질문에 질문을 이어간다. 시청자는 생소한 북한 스토리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눈과 귀를 떼기가 힘들어 진다. 자주는 아니지만 북한 여성들의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듣게 된다. 어느 곳이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겠는가?
북한 여성들도 분명 화장품을 비롯한 뷰티와 피부건강에 관심이 많지 않을까? 한번은 필자가 지인중 새터민과 대화를 해볼 기회가 있었다. 그분의 말을 인용하자면 북한은 학생 때에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으며 성인이 되더라도 향이 진하거나 색채가 짙은 화장은 지양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장마당에서 스킨(살결물)이나 로션(물크림) 등을 구입해서 사용하며 한국 드라마의 유행으로 조금 더 진한 메이크업이 나타나게 됐지만 풀메이크업(무대화장)이 흔하지는 않다고 한다. 재미있는 일화로 처음 남한에 왔을 때에는 지나간 여자가 다시 지나가고 다시 지나가고 반복해서 지나가서 너무 놀랬는데 알고 보니 풀메이크업으로 인해 낯선 이들이 비슷비슷하게 보여 구분이 잘 안됐던 것라고 한다.
또 북한 여성들의 피부는 영양이 부족한 식문화와 피부관리에 대한 인식이 낮으며 외부 노동 환경 등으로 인해 피부가 그리 좋지 못하다고 한다. 하지만 ‘남남북녀’ 라고 했던가, 남한은 남자가, 북한은 여자가 외모가 뛰어나다는 얘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모르겠지만 곧이곧대로 믿자면 북한의 여성들은 어떻게 외모를 관리하길래 이런 말이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법하다.
북한의 알 수 없는 특이적인 유전자의 힘 일수도 있겠으나 남북이 갈라진 지 70여 년만에 유전자 알고리즘이 눈에 띄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북한의 화장품이나 성형술, 피부시술, 뷰티관리샵 등이 남한보다 발전됐거나 흥행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새터민 지인도 북한 여성들이 관리를 안해서 그렇지 자연미로는 북한 여자가 남한 여자들보다 예쁜 것 같다고 한다(전적으로 새터민 지인의 개인 의견임을 밝힌다). 남남북녀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북한의 여성들도 여느 나라 여성과 마찬가지로 외모와 치장에 관심이 많고 자연미이든 화장술이든 북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도 남한 여성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의 화장품은 어떨까?
남한처럼 다양한 기술과 콘셉트로 무장되어 글로벌 선두를 향해 달리고자 하는 목표나 산업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을까? 혹은 내수용이라 할지라도 뷰티시장이 잘 형성되어 있고 관련 산업체의 질적 양적 성장과 고객 수요가 증가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의 화장품 산업도 크게 주목받고 성장하는 산업 중 하나이다. 단순 수치로 비교해 보자.
통일부 등의 자료를 인용하면 북한의 화장품 시장 규모는 약 1,000억 원대로 남한의 15조 원대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GDP 대비 1인당 화장품 소비 기준으로 따져보면 북한의 경우 GDP 0.4%를 화장품 소비에 사용하는데 이는 남한이 GDP 0.8%, 세계 평균 0.6%와 비교해 봐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통계이다(그림1). 즉, 화장품 소비에 인색하지 않고 관심이 많음을알 수 있다.
그림1 북한 화장품 시장 규모 ( 출처 : 민주평통 블로그)
그렇다면 북한의 화장품 산업과 소비를 리드하는 브랜드나 제품, 소재 등이 존재할까? 북한의 주요 화장품 브랜드는 4개다. ‘은하수’는 평양화장품 공장에서 만든 브랜드로 연간 1,500만 개의 화장품을 생산하는 북한의 대표적인 화장품 공장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이름지었다는 ‘봄향기’는 신의주화장품공장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연간 1,200만개를 생산하고 있다(그림2). ‘금강산’은 ‘봄향기’ 브랜드의 수출 버전으로 고급스러움을 부각하고 있다. ‘미래’는 묘향천호합작회사(북중)가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만든 신생 브랜드로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표방한다. 이상의 4가지 브랜드가 북한 화장품을 리드하고 있는 대표 브랜드이다.
그림2 북한 ‘봄향기’ 브랜드의 인삼크림(출처 : 통일부블로그)
화장품 산업 규모가 남한과 비교가 안되지만 나라의 통치권자가 직접 이름까지 지어주고 공장 시찰도 여러번 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화장품 산업도 가히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위 브랜드의 주요 제품들이 갖고 있는 효능 원료가 모두 ‘개성고려인삼’ 이라는 점이다. 고려인삼(Korea Ginseng)은 지형과 기후에 따라 우리나라 곳곳에 재배되고 있지만 북한의 개성인삼과 남한의 금산 인삼은 누구라도 알만큼 잘 알려진 대표적인 인삼 브랜드이다. 남한의 인삼에 대한 특히 화장품과 식품에서의 관심도와 관련 기술, 시장은 세계 TOP 수준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적어도 화장품에서 인삼이 모든 효능소재를 휩쓸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개성인삼은 남한에서도 재배하고 구할 수 있겠지만 개성 현지에서 직접 생산된 인삼으로 화장품을 만들고 쓸 수 있다는 것은 남한의 화장품 연구원들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일이다. 마치 국내산 육우와 한우의 차이점이라고나 할까.
더 넓게 한번 생각해 보자. 통일이 된다면? 적어도 북한과의 왕래가 자유로워지고 경제적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남한 화장품업 종사자들은 업무상 북한을 방문한다면 어디를 먼저 가게 될까? 필자는 개성이야 말로 최우선 희망 도시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개성인삼으로 화장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색다른 콘셉트와 스토리메이킹, 그리고 효능적으로도 남한의 인삼과 또 다른 효능이나 수준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굳이 인삼을 찾아 개성까지 가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가장 연구개발을 잘 하고 대표적인 소재가 인삼이기에 개성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신선함과 기대감을 쉽게 저버릴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개성인삼은 마케팅과 연구개발 차원에서 많은 의미를 줄 수 있다. 물론 개성공단의 경제 인프라는 덤이다.
통일된 한반도가 인삼의 종주국으로써 연구기술과 제품유통까지 글로벌 인삼시장을 장악한다는 상상은 마치 올림픽에서 그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 양궁만큼은 넘볼 수 없는 것처럼 짜릿하고 기분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사실 인삼 뿐만이 아니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식물은 수천종이 있는데 북한에서 자생하는 식물 중 신소재로 개발되지 못한 종이 1,000여종이 넘는다. 듣기만 해도 소재개발 연구원들은 가슴이 두근거릴 것 같다.
그동안 제주도나 고산지대를 샅샅히 훑어 마치 효능평가를 안해본 식물이 없을 정도로 연구데이터가 많을텐데 이젠 북한의 청정지역이 모두 연구 대상지역이 된다니 말이다. 오랫동안 개발되지 않았던 북한의 청정지역 자생식물들을 최초로 연구해 소재화 나아가서 제품화시킨다는 것은 연구원으로써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 아닐까 생각된다.
화장품 소재개발 연구를 전공으로 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만약 이러한 기회가 생긴다면 개성의 개성인삼, 금강산의 금강송, 백두산떡쑥, 개마고원의 개마투구꽃, 압록강 하구갯벌의 미생물 등을 가장 먼저 효능연구와 원료화하기 위해 뛰어갈 것같다. 효능 연구자로써 효능은 찾으면 된다. 소재 이름만 들어도 벌써 스토리와 콘셉트는 이미 합격이 아닐까 흐뭇하게 미소지어 본다. 물론 마케터의 검증이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이창석
을지대학교 바이오융합대학미용화장품과학과 교수
화장품 세포효능평가 및 기업부설 효능연구소 자문
대한미용학회 편집위원장
전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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