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열풍으로 화장품이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상황에 발맞춰 정부가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야심차게 개정한 화장품법이 시행된 지 6개월 가까이 됐다.
‘제조판매관리자’를 두는 문제를 비롯, 입법예고 기간 중 상당한 논란이 일자 정부에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준 1년간 유예기간(내년 2월4일)도 벌써 절반 정도 지났지만 업계의 혼란은 여전하다.
품질 및 안전관리 기준을 강화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의 성장세를 견인하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되레 소규모 업체를 죽이는 규제 강화가 돼 버렸다는 지적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미백 화장품을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한 업체 대표는 제조판매관리자 문제와 관련, “업계 특성상 1~2인이 운영하는 ‘근로형 경영자’들이 많은데, 직원 하나를 더 두라는 것은 문 닫으라는 말과 같다”며 “정부에서 유예기간을 줬다고 하지만 이게 어디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될 문제냐”고 성토했다.
업체 측도 높아지는 소비자의 눈높이를 고려해 일정 정도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당연한 추세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단지 업계의 불만은 제도개선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J’ OEM 업체의 K 대표는 “상위 20%만을 위한 제도로 산업경쟁력이 확보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우리도 법제도 정비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지는 건 환영하지만, 따라갈 형편이 못 되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업계에서는 내년 2월4일 유예기간이 끝나면 적지 않은 수의 영세업체들이 폐업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벌써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 업체도 있다는 전언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업계 전반의 목소리를 수렴•대표하는 단체의 역할론에 대한 불만도 팽배해지고 있다.
대한화장품협회가 있지만, 사실상 1, 2위 업체의 의견을 반영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결국 화장품법 개정 과정에서 정부가 수렴한 의견이 선도기업들만의 의견이었다는 뜻이 된다.
어떤 분야든 산업 전반이 발전하고 성장세를 공고히 다지기 위해선 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의견이 수렴된 후, 반영돼야 한다. 굳이 재벌 폐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강한 중소기업이 많아져야 산업경쟁력이 탄탄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산업경쟁력을 높이려는 정부 차원의 규제 강화가 영세업체를 잡는 몽둥이가 돼선 안 된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보건복지부 의약품정책과 담당자는 “현재 업계의 불만을 충분히 접수하고 있으며, 실무자 차원에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고려하고 있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전했다.
“소규모 업체들은 불만이 있어도 인력과 여건이 되지 않아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중견 업체 홍보담당자의 말을 정부와 업계 선도기업에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