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화장품 시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필수 소비재 인식, 소비자들의 가치 소비, 브랜드숍의 고성장 등으로 9조7천억 원 정도의 규모까지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이룬 연평균 10% 이상의 고성장에는 모자라는 것이어서 당분간 제한적인 성장 속에 갇힐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래도 제한적이지만 성장이 지속된다는 것에는 위안을 삼을 만하다. 같은 기간 비내구재 판매액이 연평균 5%대 성장을 보인 것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합리적인 가격과 제품 다변화 등을 앞세운 브랜드숍 부문은 연평균 20% 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전체 화장품 시장의 성장을 견인해 왔다. 올해도 브랜드숍 시장 규모는 약 2조5천억 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20%의 성장을 이룬 것으로 예측된다.
브랜드숍이 시장 성장 주도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대형 화장품 업체들은 주력 판매 채널인 방판과 백화점의 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자회사인 브랜드숍 부문의 고성장으로 외형 확대가 지속됐다. 아모레퍼시픽의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그리고 브랜드숍의 선두인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이 대표적이다.
브랜드숍의 선전으로 올해 아모레퍼시픽그룹은 계열사의 화장품 부문 매출이 3조를 넘어설 것으로 보이고 LG생활건강은 1조 9천억 원의 매출이 점쳐진다. 이 수치는 세재와 음료를 제외한 화장품과 뷰티 품목의 예상치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예상 영업이익은 각각 약 4,600억 원과 2,300억 원으로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브랜드숍의 고성장은 국내 화장품 시장 내 구도 변화를 유발시켰다. 우선 가장 혜택을 입은 업체가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화장품 전문 OEM/ODM 업체들이다. 이들 업체는 브랜드숍과 맞물려 최근 5년간 연평균 20% 이상 성장했고 올해 시장 규모는 약 8,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숍들이 제품 생산과 개발은 OEM/ODM 업체에 맡기고 마케팅과 유통에 주력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결국 브랜드숍 시장의 고성장으로 인해 국내 화장품 시장은 대형사, 브랜드숍 전문 업체, 화장품 전문 OEM/ODM 업체 중심으로 재편되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차원을 넘어 어느새 굳히기에 들어간 모양새이다.
2012년 상반기 실적을 보면 매출액 기준 화장품 업체 상위권에는 대기업(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브랜드숍 전문 업체(에이블씨엔씨, 더페이스샵, 에뛰드하우스 등) OEM/ODM 업체(한국콜마, 코스맥스) 등이 포진하고 있다. 여기에 원료 부자재 업체까지 덩달아 혜택을 받았다.
중견 업체 유통망 잃고 실적 부진
이러한 성장축의 이동으로 혜택을 받은 업체들이 있지만 반면에 일반점 위주였던 중견 업체들은 유통망을 잃어 실적이 부진해지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러한 현상은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CJ올리브영을 필두로 GS, 신세계 등이 가세한 드럭스토어 시장이 확대되면서 중견 업체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했고 이에 발맞춰 브랜드숍이 새 매장을 오픈하면서 지난 2004년 전문점 채널 중 82%였던 일반점 비중이 올해는 10% 미만으로 줄어들게 됐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악화된 환경 속에서 중견 업체들은 판매 부진과 재무상태 악화로 적극적인 마케팅도 이뤄지지 못해 브랜드 인지도는 더욱 낮아졌고 이는 다시 판매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특히 주 고객층인 20~30대가 브랜드숍으로 몰려 앞으로도 성장 흐름에서 밀려나는 중견 업체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실적인데 지난 3년간 국내 주요 중견 업체들의 매출액은 연평균 2~3%에서 많게는 두 자릿수의 감소세를 기록 중이고 더욱 심각한 것은 다수의 업체들이 적자 전환에 허덕인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 세계 100대 화장품 기업에 속했던 코리아나화장품, 한국화장품, 나드리화장품 등이 지금은 사라졌거나 매출액 규모가 절반을 넘어 60~70% 감소했고 영업이익에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인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향후 화장품 시장은 신유통 채널의 확대, 신규 업체들의 진입으로 성장세가 이어질 전망이고 2012년 이후에도 가격 대비 품질 경쟁력이 매력 포인트인 브랜드숍으로 소비자 유입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브랜드숍 시장의 연평균 20% 내외의 성장세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러한 흐름은 중견 업체들의 붕괴 시나리오를 수정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중견 업체들의 붕괴는 화장품 시장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켜 기이한 산업 구조를 형성하게 되고 이는 산업 전체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중견 업체들의 빈자리를 대기업 계열 브랜드숍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기업 공격적 해외 마케팅 필요성
그렇다고 대기업의 성장을 탓할 수만은 없다. 어찌됐든 그들이 산업 전체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장을 멈추면 글로벌 브랜드들에게 잠식당하게 돼 있다. 지난해까지 글로벌 브랜드들은 국내 화장품 시장 점유율을 45%로 늘려 놨다. 올해 잠시 주춤했다고 하지만 언제든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가져갈 저력이 있다. 대기업의 성장은 일단 글로벌 브랜드와의 한 판 승부라는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한 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세계 화장품 시장에서 글로벌 브랜드를 상대로 자국 브랜드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자국의 브랜드가 백화점 매출 1위를 차지하는 나라도 한국과 프랑스뿐이다. 일본의 시세이도조차 일본 백화점 점유율이 1위가 아닌 상황에서 어찌 보면 선전이고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경쟁력이 국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약 250조 원 규모인 전 세계 화장품 시장에서 수출과 현지 매출을 합쳐도 2조 원을 넘지 못한다. 국내 1위 업체의 해외 매출이 3천억 원 규모이니 대부분의 매출이 국내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따라서 세계 유이의 자국 브랜드 1위라는 타이틀은 국내 시장 공략에 중점을 뒀다는 증거이다.
자국 브랜드 1위보다는 경쟁력 있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것이 급선무이고 이를 위해서는 국내 시장 공략의 에너지를 해외 시장으로 옮겨야 한다. 더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에는 모든 글로벌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 공략에 총력을 쏟는다. 중국은 아시아에 속하고 한류의 영향권에 있다. 우리가 더 유리할 수 있다. 글로벌 브랜드들을 이길 수는 없지만 점유율을 늘리기에는 충분한 여건이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의 선전으로 실적이 개선된 업체는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그리고 제닉이 대표적이다. 화장품 시장에 있어서 중국의 중요성을 이들 업체가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이들 업체는 국내 중소형 화장품 업체 중 중국 시장에서 가장 탄탄하고 빠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중저가 화장품의 OEM/ODM(제조자 개발생산·주문자 상표부착생산) 수요 증가로 견조한 성장이 가능했다. 그래서 이들 업체는 내년도 전망이 더 밝은 편이다.
다만 제닉은 3분기부터 삐끗했다. 마스크팩 가격 인상으로 판매가 저조해진 탓이다.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홈쇼핑의 영향이 컸다. 2분기 가격 인상 이후 시간당 판매액이 1분기 대비 15.9% 감소한 데다 이를 만회하고자 판촉비용을 늘렸다. 게다가 9월에 중국 동방CJ에서 홈쇼핑 첫 방송 판매 이후 통관 절차에 따른 재고 수급 문제로 추가 방송이 진행되지 못한 것도 원인이 됐다.
10조 시장, 유통부문 외형 확대
올해는 10조 원에 육박한 화장품 시장의 성장에 맞물려 유통 부문도 외형을 확대했다. 신유통 채널로 불리는 드럭스토어 시장에 이마트가 등장하고 롯데까지 가세할 의지를 내비치면서 본격적인 성장 단계에 들어섰다. 게다가 신세계를 비롯해 대형 유통업체들이 화장품 업체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비집고 들어와 외형이 확대된 만큼 경쟁도 치열해졌다.
대형 유통사는 화장품 사업 전개와 동시에 판매망까지 보유하고 있어 향후 시장 내 강자로 부상할 전망이다. 하지만 여전히 성장폭에는 제한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기도 그렇지만 국내 경기 회복이 지연돼 올해도 화장품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백화점과 방판 채널의 성장에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CJ올리브영과 GS왓슨스가 급격하게 늘리고 있는 드럭스토어나 새롭게 등장한 업체들은 아직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 화장품 시장의 성장에 기여하기에는 2~3년의 기간이 소요된 뒤에나 가능하다. 지난해 드럭스토어 시장 규모는 약 3,260억 원으로 전체 화장품 시장의 3.3%에 불과했다.
상위 10개 업체 전체 시장 80% 이상 차지
결국 신규 화장품 업체와 드럭스토어 등이 시장에 안착하기 전까지 화장품 시장의 성장은 대기업과 브랜드숍 그리고 중국에 진출한 OEM/ODM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올해도 에이블씨엔씨, 더페이스샵을 선두로 브랜드숍들이 20%에 달하는 고성장을 보였지만 타 채널의 부진이 성장을 약화시켰다.
경쟁이 심화된 환경에서 업계의 수익성이 악화된 것인데 이런 때일수록 글로벌 브랜드들이 국내보다는 중국 진출에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대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선전하는 것은 국내 시장에도 호재가 될 수 있다.
포화 상태인 국내에서는 할인, 기획 상품 출시 등 출혈 경쟁만 증가되고 인지도와 브랜드 파워 확보를 위한 광고와 마케팅 강화로 판관비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판관비 증가율이 매출 증가율을 상회하는 건 중소업체들로서는 견디기 어렵다.
결국 올해도 대기업과 대기업 계열사 브랜드숍 그리고 브랜드숍 전문 업체와 OEM/ODM 등 상위 10개 업체가 국내 화장품 시장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했고 나머지 업체들이 20%도 채 안 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경쟁을 벌인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2012년 화장품 주요 업체 예상 실적
▲ 자료 제공 : 금융감독원, 각 사 자료 참고, 시가총액 순(상위 2개 업체 제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