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인코리아닷컴 이효진 기자] 올 한해 화장품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멈추면서 국내는 물론 박차를 가해왔던 해외 진출에도 타격을 입었다. 당장 매출과 영업이익이 뒷걸음질치며 실적 하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화장품 기업들은 희망퇴직을 비롯한 조직개편을 실시하고 임원 인사로 리더십에 변화를 주며 위기 탈출에 나섰다. 언택트 트렌드에 맞춰 온라인으로 소비의 축이 대폭 이동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축소하는 등 유통채널에도 변화를 줬다. 2020년 한 해를 돌아보며 화장품 기업들의 경영환경 변화와 이에 따른 위기 극복 노력 등을 짚어봤다.

 

# 코로나19 충격, 대부분 화장품 기업 실적 1년 내내 '뒷걸음질'

 

화장품 기업들은 올 한해 코로나19라는 수렁에 빠졌다. 올해 초부터 계속된 코로나19 사태로 외부활동이 자제되면서 사람들로 붐볐던 ‘화장품 1번가’에도 발길이 끊겼다. 이에 화장품 오프라인 매장들이 직격탄을 입었고, 국가 간 이동 제한으로 외국인 관광객에 기댔던 면세점 매출도 곤두박질쳤다. 해외 수출을 위한 행보에도 제동이 걸렸다.

 

국내 화장품 산업의 타격은 화장품 기업들의 실적 변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내 화장품 공개기업들은 올해 1분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매출액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마이너스 성장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2분기와 3분기 실적에도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짙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전년 동기 대비 하락하면서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른 충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코스인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공시자료인 분기보고서를 바탕으로 국내 화장품 공개기업(코스피, 코스닥) 55개사의 3분기 경영실적을 집계, 분석한 결과 전체 매출액은 6조 9,062억 원으로 7조 4,365억 원을 기록했던 전년 동기 대비 -7.1% 줄어들었다. 영업이익은 –12.9% 감소한 5,434억 원, 당기순이익은 -45.3% 줄어든 2,624억 원을 기록했다.

 

이들 기업 가운데 35개사의 매출액이 하락했고, 11개 기업은 영업이익이 줄어들었다. 8개사는 적자전환했으며, 영업손실을 지속하거나 적자 폭이 확대된 기업도 19개사나 됐다. 당기순이익이 줄어든 기업은 11개사, 적자전환은 13개사, 적자를 지속하거나 적자 폭이 확대된 기업은 17개사로 집계됐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을 필두로 한 역삼각형의 구조의 국내 화장품 산업에서 손꼽히는 매출 규모와 이익체력을 가지고 있는 공개기업들의 이 같은 실적은 올해 화장품 업계가 처한 위기를 대변한다. 중소 화장품 기업들은 실적이 제자리를 유지한 것만으로 ‘선방’했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실적을 유지하지 못한 더 많은 화장품 기업들은 인원 감축 등 조치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지 못했다.

 

# 국내 대표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 생존전략 ‘총동원’

 

경영 위기 속 화장품 기업들도 ‘특단의 조치’를 잇따라 내놨다. 임대료와 인건비 등 적잖은 고정비를 차지하면서도 코로나19에 따른 외부활동 자제와 멀티 브랜드숍으로의 유통채널 변화에 밀린 오프라인 매장을 정리하고, 인원 감축을 비롯한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임원 인사에서도 ‘젊은 피’로의 세대교체를 통해 다시 한 번 경영에 활력을 더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 대표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쓸 수 있는 패는 다 썼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의 성암빌딩을 매각해 1,520억 원의 현금을 확보하는가 하면 서경배 회장이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급여 50%를 자진 삭감했다. 최고경영자(CEO)는 급여 50%를 삭감하고 임원들도 20%를 자진 삭감했다.

 

 

강남, 명동 등 화장품 핵심 상권에서 아리따움 직영점 등 오프라인 매장을 폐점하고 직원 감원 등 고강도 구조조정도 진행됐다. 먼저 적자 점포인 국내 아리따움(직영점 5개)과 중국 이니스프리(18개) 매장을 정리했다. 여기에 지난해 말 기준 25개였던 국내 아리따움 직영매장을 올해 말까지 10곳만 남기고 중국 이니스프리 로드숍도 90개 이상 폐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말 이후 지난 8월까지 20개월 동안 아리따움, 이니스프리, 에뛰드 등 아모레퍼시픽 가맹사업 3개 브랜드의 가맹점 661곳이 문을 닫았다.

 

2018년 말 기준 전국 아리따움 매장 수는 1,186개, 이니스프리는 750개, 에뛰드는 321개 등 총 2,257개였으나 올해 들어 빠르게 사업을 정리해 8월 기준 각각 880개, 546개, 170개만 남았다. 오프라인 매장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직원 수도 지난해 6,064명에서 올해 9월 5,855명으로 줄었다.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도 단행했다. 급변하는 시장 변화에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까지 더해지자 전사적인 비용 절감과 임원 급여 삭감, 조직 인력 재배치 등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펼쳤으나 위기 상황 극복에는 미흡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이에 지난 11월 사내에 희망퇴직 관련 공지를 게재하고 근속 만 15년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 퇴직자를 모집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희망퇴직은 1945년 창사 이후 75년 만에 처음으로,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충격의 크기를 보여주는 결과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이와 함께 2021년 1월 1일자 조직개편에서는 대대적인 쇄신 인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새 대표에 51세 김승환 부사장을 발탁하고 설화수, 라네즈 등 핵심 브랜드의 책임자도 40대 ‘젊은 피’로 대폭 세대 교체하는 등 ‘기업 경영 전반의 체질 개선’이 두드러졌다.

 

# 화장품 기업 생존전략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다”

 

화장품 대기업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재채기’를 했다면 중견, 중소 화장품 기업은 ‘몸살’을 앓았다. 사업의 ‘핵심’만 남기고 정리하는 작업이 올 한해 멈추지 않았다.

 

화장품 개발 제조생산(ODM) 기업인 한국콜마의 지주사 한국콜마홀딩스는 자회사 콜마파마의 보유지분 전량과 한국콜마의 제약사업부문을 매각, 몸집을 줄였다. 이를 통해 한국콜마는 화장품 사업에 집중하고 제약사업은 자회사인 HK이노엔(구 CJ헬스케어)이 집중하는 방향으로 그룹의 사업구조를 재편, 핵심 역량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SK그룹의 화학소재 계열사인 SKC는 자회사 SK바이오랜드를 매각했다. 화장품 원료 회사인 SK바이오랜드는 현대HCN에 인수되며, 새롭게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현대백화점그룹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탈리아 화장품제조업체 인터코스와 함께했던 화장품 제조 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는 사업 시작 5년 만의 결정으로 제조업과 브랜드 사업 모두 안고 가기에는 현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업계의 반응이 이어졌다.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와 클리오, 잇츠한불, 네이처리퍼블릭 등도 오프라인 매장의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 개선에 나섰다. 효율이 낮은 가맹점과 유통점 위주로 매장을 축소, 비용을 줄이고 유통채널 전반에 변화를 주기로 한 것이다.

 

에이블씨엔씨는 오프라인 폐점과 더불어 멀티 브랜드 편집숍 눙크로 전환했다. 이에 미샤 매장은 2018년 681개에서 올해 1분기 540개까지 대폭 줄어들었다. 클리오는 올해 상반기 중 로드숍 브랜드인 ‘클럽클리오’ 매장 수를 10곳 가까이 줄었다. 또 자사몰 뿐 아니라 쿠팡 등 이커머스 채널로 판매를 확대하면서 온라인 매출 비중을 늘리고 있다.

 

# 코로나19 속에서도 역대 최대 실적, 코스닥 상장 등 ‘경사’

 

올 한해 악재 속에서도 실적이 두드러진 곳도 있었다. 다변화된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LG생활건강이 대표적이다.

 

LG생활건강은 코로나19 사태에도 올해 3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5.4% 늘어난 2조 706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3,27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1% 증가했다. 3분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화장품 기업들의 실적이 바닥을 치는 가운데서도 ‘후’, 더마화장품 ‘CNP’ 등 럭셔리 브랜드들의 국내외 수요에 힘입어 빠르게 매출을 회복했다.

 

해외 시장에서의 선전도 눈에 띈다. LG생활건강은 제57회 무역의 날 10억불탑을 수상했다. ‘후’를 이어 ‘숨37’과 ‘오휘’, ‘빌리프’에 이르기까지 견실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지난 1년간(2019년 7월 1일~2020년 6월 30일) 직수출과 로컬, 기타 수출을 합한 전체 수출 실적은 12억 2,000만 달러를 달성했다.

 

 

코스맥스도 손세정제의 ‘코로나 특수’에 힘입어 양호한 실적을 냈다. 올해 2분기 매출액은 3,79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1%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262억 원을 기록, 99.2%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3분기에는 매출액이 3,207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 늘고, 영업이익은 139억 원으로 33.7% 증가했다. 높아진 시장의 기대치를 채우지를 못했지만 코로나19에 따른 화장품 기업들의 실적 하락 속에서 도드라지는 성과를 냈다.

 

특히 내년에는 중국의 ‘신(新) 화장품감독관리조례’ 시행에 따른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화장품 생산 안전 관리 규정이 강화되면서 로컬 업체들의 빈자리를 코스맥스의 중국법인들이 채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힘든 시기를 보냈을 지라도 화장품 해외 수출은 상승 곡선을 그렸다. 제57회 무역의 날 화장품 기업 161개사가 수출의 탑을 수상하고 51명이 무역유공자로 포상과 표창을 받는 등 수출 주역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올 하반기 중국 최대 쇼핑 축제인 11월 11일 광군제 등에 힘입어 중국으로의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내년도 실적 회복의 청신호를 켰다.

 

# 기업공개(IPO) 화장품 기업 '흥행성공'  피엔케이피부임상연구센타, 엔에프씨 코스닥 입성 '주목' 

 

올해 기업공개(IPO)를 추진한 화장품 기업들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피엔케이피부임상연구센타, 선진뷰티사이언스, 엔에프씨, 원바이오젠, TS트릴리온, 씨앤씨인터내셔널 등이 코스닥 상장을 추진했으며 피엔케이피부임상연구센타, 엔에프씨 등 일부 기업은 성공적으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기업공개를 추진 중인 기업들의 전망도 밝은 상황이다.

 

대봉엘에스의 자회사인 피엔케이피부임상연구센타는 피부인체적용시험 업계 최초로 올해 9월 코스닥 상장했다. 수요예측에 이어 일반청약에서도 흥행에 성공하면서 가치를 주목받았으며, 상장 이후 공모가를 상회하는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상장을 연기했던 화장품 원료 기업 엔에프씨는 기업공개 재도전에서 수요예측과 일반 공모청약 모두 흥행에 성공하며 12월 2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탈모샴푸 ‘TS샴푸’로 유명한 TS트릴리온은 하이제4호기업 인수목적(SPAC-스팩)과의 합병으로 12월 30일 코스닥 시장에 입성할 예정이다. 또 선진뷰티사이언스, 원바이오젠, 씨앤씨인터내셔널은 내년 초 상장을 목표로 코스닥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